안동人

퇴계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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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학파
퇴계를 잇는 충의(忠義)의 선비 학봉 김성일
  • 한글명 : 학봉 김성일
  • 한자명 : 金誠一
  • 호 : 학봉(鶴峯)
  • 시호 : 문충(文忠)공
  • 출생지 : 안동
  • 본관 : 의성
  • 나이 : 55
  • 생년 : 1538
  • 몰년 : 1593
연보
년도 내용
1538년 (1세) 중종 33년, 안동부 임하현 천전리에서 아버지 진사 진(璡)과 여흥 민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출생.
1543년 (6세) 효경을 배우기 시작하다.
1546년 (9세) 어머니 민씨 별세.
1555년(18세) 안동권씨와 혼인하다.
1556년(19세) 퇴계문하로 들어가다.
1557년(20세) 광흥사에서 공부.
1558년(21세) 첫째아들 집(潗) 출생.
1564년(27세) 진사시에 합격.
1565년(28세) 태학(太學)에서 공부.
1568년(31세)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보임.
1572년(35세) 단종의 묘를 봉직할 것과 사육신의 관직을 복구할 것을 청하다.
1573년(36세) 형조좌랑, 사간원정언으로 임명.
1575년(38세) 병조좌랑으로 임명.
1576년(39세) 이조좌랑으로 임명.
1577년(40세) 명나라 사신으로 압록강을 건너 북경으로 들어가다.
1579년(42세) 사헌부장령. 의정부사인.
1580년(43세) 아버지 판서공 별세.
1581년(44세) 상례고증(喪禮考證)을 짓다.
1582년(45세) 서후 금계리로 이거.
1583년(46세) 사간원사간.
1584년(47세) 나주에서 대곡서원을 세우다.
1586년(49세) 나주 사직단(社稷壇) 화재의 책임을 지고 사직하다. 고향에 돌아와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이황의 자성록(自省錄), 퇴계집 등을 편집, 간행하였다.
1587년(50세) 석문정사를 신축. 봉선잡의(奉先雜儀), 길흉제규(吉凶諸規)를 짓다.
1588년(51세) 종부시첨정이 되고 이어서 봉상시정·경기추쇄경차관(京畿推刷敬差官)·예빈시정·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52세)
일본통신부사로 차임.
1590년(53세) 4월 27일 동래 출발, 5월 1일 대마도 도착, 7월 22일 일본 수도 도착.
1591년(54세) 2월 초에 부산에 도착, 성균관대사성 겸 승문원부제조에 임명. 홍문관부제학 임명.
1592년(55세) 형조참의,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제수, 임진왜란 발생 후 진주, 경상좌우도절도사를 도맡아 왜적과 전투. 의병과 관병간의 내분을 수습하고 진주대첩을 이끌다.
1593년(56세) 3월 29일에 누적된 병마와 과로로 진주 공관에서 별세.
1607년 임천향사 봉안.
*향사 : 서원에서 공자등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말한다.
1618년 임천향사를 서원으로 승격
  안동의 호계서원(虎溪書院)·사빈서원(泗濱書院), 영양의 영산서원(英山書院), 의성의 빙계서원(氷溪書院), 하동의 영계서원(永溪書院), 청송의 송학서원(松鶴書院), 나주의 경현서원(景賢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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