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 안동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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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忠烈王) 때 몽고군(蒙古軍)과 고려군(高麗軍)이 연합하여 두 차례 일본정벌에 나선 일이 있다. 『고려사』를 보면 1281년 제2차 정벌 기간 중에 충렬왕이 30여 일 이상 안동에 머문 적이 있다.
충렬왕은 안동 행궁(行宮)에서 일본 정벌에 실패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다시 원나라에 장수를 파견하여 이 소식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 때 고려군 도원수(都元帥) 김방경(金方慶) 장군은 충렬왕의 안동 행궁에 찾아왔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퇴각하던 몽고군도 안동을 경유하여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안동소주는 충렬왕이 안동에 머물던 1281년에 전래된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그 후 공민왕(恭愍王)이 1361년 12월부터 70일간 홍건적의 침입을 피하여 안동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 때 안동사회에 소주가 폭넓게 확산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현재 우리나라 소주는 증류식과 희석식 2종류로 나누어진다. 이중 안동소주는 증류식으로 만들어진 소주이다.
안동소주는 안동지방의 좋은 물과 품질 좋은 쌀을 쪄서 밑술을 빚어 증류시킨 것으로 원래 안동지역에서는 각 가정마다 그 양조방법이 전해 내려와 가양주(家釀酒)로 빚어 손님접대, 각종 행사 및 제사에 이용되어 온 술이다. 특히 안동지방의 가문에서 딸이 첫 시가에 갈 때 으레 안동소주를 가지고 가 시아버님의 귀여움을 받기도 하였다 한다.
안동소주는 안동지역에서는 각 가정마다 그 양조방법이 전해 내려와 가양주(家釀酒)로 빚어 손님접대, 각종 행사 및 제사에 이용되어 온 술이다
고려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알콜 45도의 가양주
안동지역의 여러 집에서 소주를 빚는 방법이 전승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가양주 제조금지령에 의해서 거의 전승이 단절 되다시피 했다. 안동소주는 안동사람들에 의해서 배앓이,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는 약용술로 그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그러다가 1915년 안동시 남문동에 설립된 ‘안동주조회사’에서 안동소주를 생산하여 서울, 만주, 일본 등지로 판매하면서 그 명성이 확산되었다. 당시 안동주조회사를 설립한 사람은 안동에서 최고 부자였던 국담(菊潭) 권태연(權台淵, 1880~1947)이었다. 안동사회에서는 “권참사(權參事)”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일제의 양조정책과 근대적 공장제 생산체계와 관련하여 안동소주는 안동의 전통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품화되었다. 안동소주가 알코올도수 45도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세금 징수를 위하여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62년부터 순곡소주 제조가 금지되자 희석식 소주가 만들어져서 1971년까지 생산되다가 그 회사가 1975년에 (주)금복주에 합병됨으로써 안동소주의 명성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 이후 안동소주는 사실상 전승의 맥이 단절되어 있었으며, 알콜 45도로 ‘불이 붙는 술’ ‘독한 술’ ‘좋은 술’이라는 기억만이 회자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전통적인 제조방식에 의한 안동소주는 1987년 경북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 받게 되었고 이후 1990년 9월 안동시 신안동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선생에 의해 그 생산이 재개되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다. 현재 안동에는 민속주 안동소주, 전통명주 안동소주, 안동 영가주 등의 안동소주로 상품화되어 시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