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위제사(제례)음식
안동에는 유난히 [불천위제사 : 제사는 보통 위로 4대(고조부)까지 지낸다. 불천위 제사란 후손들이 계속 제사를 올리는 특별한 제사를 말한다.
‘위패를 영구히 받드는 제사’, ‘영원히 제사를 지내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다.] 가 많다. 불천위제사는 국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에 대하여 4대봉사가 끝난 후에도 영원토록 지내는 기제사이다.
불천위제사의 대상을 불천위라고 한다. 불천위는 사후에 국가 또는 유림에서 사회적 공헌도를 인정하여 추대 받은 사람이다. 물론 불천위에 대한 인식은 조선 후기 문중의식의 성장에 따라, 그리고 종법질서의 확립과 병행하여 확대 정착되었다.
안동댐과 임하댐 건설로 많은 사람들이 외지로 이주하기 전에는 안동댐 모두 50위의 불천위가 있었다.
전국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불천위이다. 그 가운데 6위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안동에서 불천위제사가 치러지고 있다. 불천위제사는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 가운데 위상이 가장 높고 의례절차가 체계화되어 있어서, 일반 제사의 전범이 되었다.
그럼 여기서, 음력 98년 12월 7일(99.1.24)에 모셔진 퇴계 이황 선생의 불천위제사 음식에 대하여, 김영순 선생이 조사한 자료에 근거하여 살펴보자. 하나의 제기에 높이 괴어 올린 편은, 아래에서부터 ‘본편’(시루떡) - ‘맞편’(짝편) - ‘당귀떡’ - ‘찰편’ -경단 -[부편 :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콩가루에 꿀과 계핏가루 섞은 것을 소로 넣고 경단처럼 동들게 빚어 쪄서 겉에 곶감채를 묻힌 떡] ’ -‘잡과편’ - ‘전’ - ‘조약’ 등을 순서대로 괴었다. 어적(魚炙), 육적(肉炙), 계적(鷄炙)을 하나의 제기에 담은 ‘도적’(都炙)의 경우, 밑에서부터 방어 - 상어 - 홍어 - 청어 - 문어 - 쇠고기 - 닭고기의 순으로 전부 날것을 담았다. 제기가 구분되어 있는 탕은 ‘계란탕’, ‘명태탕’, ‘문어탕’, ‘쇠고기탕’, ‘닭탕’ 으로 5탕을 올렸다.
채소의 경우에는 한 접시에 고사리, 시금치, 토란, 도라지, 무, 박나물을 구분을 지어가며 함께 담았다.
이것이 물론 전부는 아니다. 밥, 국, 국수, 대구포, 편적(처녑), 쇠고기 육회, 조기자반, 배추침채(물김치), 편청, 간장, 그리고 과일(밤, 사과, 대추, 귤, 곶감, 배, 대추)과 술이 따랐다.
퇴계 선생은 검약하게 제사를 지내라고 말씀하셨기에 다른 가문의 불천위제사보다 제사음식이 일반적으로 약소하다고 한다. 그래도 선생은 학덕이 높은 까닭에 일반적인 기제사보다 더 성대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탕의 수에서 드러난다. 일반 기제사에서는 3탕을 쓰다가 선생의 불천위 제사에서는 5탕을 올렸다. 봉사위가 당상관 이상의 품계일 때만 5탕을 쓴다고 한다. 조상의 품계와 공적에 비례하여 탕이 올려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불천위제사 음식은 일반 기제사 음식보다 질과 양에서 더 우위에 있었다. 불천위는 가문을 빛낸 조상으로서 자손만대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 분이므로 제사음식이 더 성대한 것이다. 물론 불천위제사는 일반 기제사보다도 참제자의 수가 많고 공개적인 제사라는 점에서도 음식이 풍성하고 과시적으로 차려질 수 있다. 불천위제사 음식 가운데서 주목되는 것은 전통적으로 육류와 생선을 날 것으로 올리는 예가 많았고, 아직도 그런 종가가 여럿 있는 점이다. 그것은 갓 잡은 날것이 익힌 것보다 더 신선한 것이므로, 더 깨끗하여 더 신성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즉, 불천위 조상에게 가장 신선한 제물을 올린다는 것은 일반 조상에 대해서보다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는 뜻이다.
그밖에 안동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제사 음식에 대한 규칙을 살펴보자.
제사음식의 떡은 '본편'이라 불린 시루떡을 가장 많이 쌓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떡을 층층이 괴어서 높게 한다.
시루떡 위에 올라가는 갖가지 떡은 외형상 본편을 장식하는 형상으로서, 모양과 색, 재료, 만드는 법 등이 다양하다. 이러한 떡을 높게 괴어서 올린 것은 "제사에 떡을 안 올리면 조상이 섭섭하게 여긴다"고 하는 기본적 필요조건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제사상에 올라간 떡의 종류와 양은 비록 가문마다 차이가 있고 경제사정에 따라서 편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떡을 의미한다.
도적과 탕의 구성은, '우모린(羽毛鱗)'이라 하여 '깃털 있는 날짐승 고기'(羽), '털이 난 네 발 짐승고기'(毛), '어류 즉 생선'(鱗)을 기본으로 하다. 우모린의 구성에 대해서는 하늘, 육지, 바다에서 나는 모든 고기를 상징적으로 집약한 결과로 인식하고 있다. 도적을 쌓을 때에도 하단에는 바다에서 나는 어류를, 중간에는 뭍에서 나는 고기, 상단에는 날짐승을 순차적으로 올려서 그러한 상징성을 수직적으로도 잘 표현하고 있다. 간혹 어떤 가문에서는 '우모린개(羽毛鱗?)'라 하여 맨 아래층을 하나 더 설정하고 여기에 바다의 맨 밑바닥에 사는 패각류(?)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우주적 수직구도를 적용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제기에 담을 동물성 제물을 안동지역에서는 하나의 제기에 높이 괴였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출처 : 배영동의「안동지역 음식의 유교문화적 색채와 향기」, 『안동 선비음식의 전통과 향기』, p55~56 >
불천위제례음식
제수의 종류
술(酒) : 보통 청주, 약주를 제주로 한다.
반(飯)과 갱(羹) : 밥은 흰쌀밥으로 한다. 제사상에는 잡곡밥을 올리지 않고 쌀밥으로 진메를 올렸다. 갱에 대하여
[사례편란]에서 대갱(大羹)은 고기만을 고은 것, 형갱은 고기와 채소를 섞어서 끓인 것이라 하며 채경(采羹)은 채소
만으로 끓인다.
과실(果實) : 밤, 대추, 곶감은 필수적이고, 호두, 사과, 배, 감 등 모든 생실과 건과를 쓸 수 있으나 복숭아는 금한다.
조과(造菓) : 유과나 약과, 다식, 전과, 강정 등 적당한 것을 쓴다.
면(麵, 국수) : 국수를 삶아 건더기만 건져서 그릇에 담는다. 떡을 쓰지 않을 때는 면을 쓰지 않는다.
탕(湯) : 고기, 생선, 문어, 표고, 두부 등으로 만들며 보통 세가지나 다섯가지를 쓰며 홀수로 한다. 탕기를 한 개만
놓을 때에는 단탕 차림이며 3탕, 5탕까지 할 수 있다. 5탕 일대는 봉탕, 잡탕을 더한다.
포(脯) : 포는 육포 또는 어포나 건어를 쓴다.
적(炙) : 고기나 생선으로 만들어 쓰는데 문어, 상어, 쇠고기, 집산적, 닭 등을 쌓는다.
삼적(육적, 어적, 소적(두부))
*고기와 생선을 날 것으로 쓰는 제례로서는 시조제, 선조제, 불천위제가 있다.
전(煎) : 기름에 튀기거나 부친 것이다. 전과 적을 합해 홀수가 되어야 한다. 기제사에는 전 또는 간납전을 쓰지만
큰 제례에서는 수육, 육회, 어회 등을 모두 접시에 담는다.
미식(米食) : 떡이다. 떡은 본편과 웃기편을 하여 본편을 쌓고 위에 웃기편을 올린다. 제사에 쓰는 떡은 계피팥고물,
녹두팥고물, 흑임자고물을 묻히고, 찐 찰편, 멥살편 등을 쓴다. 편을 쌓아 올린 위에 주악 등을 얹어
고인다.
숙채(熟菜) : 숙채는 나물을 말하며 보통 3색 나물을 쓰는데 흰색나물로는 콩나물, 무, 도라지 등을, 푸른색은시금치, 미나리, 고춧잎이나 산나물을 쓰고, 갈색나물은 고사리, 가지 등으로 한다.
침채(沈菜) : 생김치는 고추를 쓰지 않은 물김치, 보통 나박김치 또는 동치미로 한다.
혜(醯) : 밥을 엿기름에 삭힌 식혜밥을 접시에 담고 대추나 잣을 얹는다. 식혜는 주로 생선젓 대신 쓴다.
숭늉 : 통상적으로는 숭늉이 아니라 맹물에 밥알을 몇 알 풀면 된다.
이외에도 고인이 평소에 즐기던 음식을 차려 올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제물을 많이 차리는 것보다 정성을 다하고 자손에게 선조의 유훈 등을 일깨워 주어서 선조에 대한 존경을 갖게 하는 것이 옳다.
제사는 일반적인 형식은 비슷하나, 제수의 종류나 진설의 방법은 가문, 학맥, 지방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서애대감이 즐겨 드셨다는 "중개"라는 과자 중개는 서애 불천위제사상에 오르고 있다.
기제사의 순서
1. 분향
제주가 제상앞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두손으로 향불에 분향을 한뒤 절을 두번한다.
2. 강신(降神)
신위로 내려오도록 하는 절차이다.
제주이하 모든 사람이 손을 모아서 있고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분향하고 집사자가 술을 술잔에 차지 않도록 조금 따라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받아서 모사(茅沙)에 3번 나누어 붓고 빈 잔을 집사에게 돌려 보내고 일어나서 두번 절을 한다. 향을 피움은 위에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요, 술을 따르는 것은 아래 계신 신을 모시고자 함이라 한다.
3. 참신(參神)
참신이란 강신을 마친 후 제주이하 모든 참신자가 함께 2번 절하는 것을 말한다. 신주(神主)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하고 지방(紙榜)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4. 초헌(初獻)
초헌이란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꿇어 앉아 분향한 후 집사자가 잔을 제주에게 준다. 제주는 잔을 받아 집사자가 잔에 따른 술을 강신할 때와 같이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에 조금씩 3번 기울여 붓는다. 다음 양손으로 잔을 받들어 집사자에게 주면 집사자는 그것을 받아서 제상에 올린다. 먼저 고위(考位) 앞에 올리고 두 번째 잔을 받아서 그대로 비위에 올리고 저(箸)를 고른 후 재배한다.
5. 독축(讀祝)
독축이란 축문을 읽는 것을 말한다.
축문을 읽고 제주는 재배한다.
6. 아헌(亞獻)
아헌이란 2번째 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아헌은 주부 또는 제주의 형제 중 장자(長者) 또는 친족이 한다. 주부가 올릴 경우 4번 절한다.
7. 종헌(終獻)
종헌이란 3번째 올리는 것을 말한다. 형제 가운데 장자 혹은 장남 이나 차남 또는 조카가 한다. 이로써 제사의례의 삼헌을 모두 마치게 된다.
8. 계반삽시(啓飯揷匙)
계반삽시란 메(밥) 그릇의 뚜껑을 열어 놓고 수저를 꽂는 것으로 수저바닥이 동쪽으로 가게하여 꽂는다.
9. 유식(侑食)
첨작(添酌)이라고 하는데 종헌자가 채우지 않은 술잔에 제주가 무릎을 꿇고 다음 잔에 술을 조금 따라서 좌, 우측 사람을 통하여 술을 채우도록 한다.
10. 합문(闔門)
제상 앞을 병풍이나 장막으로 가리우고 제주 이하 참여자가 잠시 정숙한다(합문). 이때를 흠향(歆享)이라 한다. 조상이 제사 음식을 충분히 흠향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11. 계문(啓門)
축관이 기침 소리를 내고 가리웠던 것을 연다(계문).
12. 헌다(獻茶)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리고 메(밥)를 조금씩 3번 떠서 말아 놓고 저(箸)를 고른다.
13. 철시복반(撤匙復飯)
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고 메그릇에 뚜껑을 덮는다.
14. 사신(辭神)
수저를 내리고 제주 이하 두 번 절한다. 신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15. 납주(納主)
신주는 사당으로 모시고 지방과 축문을 불태운다.
16. 철상(撤床)
철상이란 모든 제수를 물리는 것으로 제수는 뒤에서부터 물린다.
17. 음복(飮福)
음복이란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란 뜻으로 제사가 끝나면 제찬을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친족과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
기제사 차리는 법
제례는 돌아가신 선조에게 음식을 차리고 자손이 효를 올리는 의식이다.
밥은 주발에 담고, 갱은 깊이 있는 탕기에 건지만 담으며, 전, 나물 등의 찬은 다리가 달린 쟁첩에, 김치는 보시기에, 간장, 초, 꿀 등은 종지에 담는다.
떡은 사각진 편틀에 시루떡을 아래 고이고, 위에 송편, 화전, 주악 등 웃기떡을 올린다. 적은 적틀에 생선적, 쇠고기적, 닭적의 순으로 한 그릇에 쌓아 올린다.
과일이나 조과(造果)를 놓는 차례
-조율이시(棗栗梨枾) 진설법
진설자의 왼편으로부터 조(대추), 율(밤), 이(배), 시(곶감)의 순서로 진설하고 다음에 호두 혹은 망과류(넝쿨과일)을 쓰며 끝으로 조과류(나식, 산자, 약과)를 진설한다.
-홍동백서(紅東白西)진설법
붉은색 과일을 동쪽, 흰색 과일을 서쪽에 진설하고 그 가운데 조과류인 다식, 산자, 약과 등을 진설한다.
반찬류를 놓는 순서
좌포우혜라 하여 포(문어, 명태, 오징어 등)을 왼편에 식혜를 오른편에 진설하며 침채(김치, 동치미 등), 숙채(불에 삶거나 짜서 익힌 나물), 청장(간장)을 그 가운데 놓는다.
탕을 놓는 차례
어동육서(魚東肉西)라 하여 물고기탕은 동쪽(우측), 육류탕은 서쪽(좌측)에 진설하고 그 가운데 채소, 두부 등으로 만든 소탕을 설치하되 단탕, 삼탕, 오탕 반드시 홀수로 쓴다.
적과 전을 놓는 차례
적이라 함은 불에 굽거나 찐 것을 말하며 전이라 함은 기름에 튀긴 것을 말한다.
1. 어류를 동쪽에, 육류를 서쪽에 진설하여 그 가운데 두부, 채류를 진설한다.
2. 두동미서라 하여 어류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진설한다.
안동지역 불천위 현황
안동지역 불천위 현황
번호 |
본관 |
성명 |
소재 |
행적 |
누정 |
서원 |
1 |
능성구씨 |
구봉령具鳳齡 |
와룡면 지내리 |
학자,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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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계서원 |
2 |
안동권씨 |
권구權? |
풍천면 가곡리 |
학자 |
시습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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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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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權宇 |
와룡면 이상리 |
학자,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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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
권징權徵 |
와룡면 가야리 |
학자,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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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
권환權奐 |
임하면 임하리 |
학자,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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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봉화금씨 |
금란수琴蘭秀 |
예안면 부포리 |
학자 |
고산정 |
|
7 |
안동김씨 |
김계행金係行 |
길안면 묵계리 |
학자, 관료 |
만휴정 |
묵계서원 |
8 |
풍산김씨 |
김간金侃 |
풍산읍 오미리 |
학자,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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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
김양진金楊震 |
풍산읍 오미리 |
학자, 관료 |
|
물계서원 |
10 |
|
김대현金大賢 |
풍산읍 오미리 |
학자 |
죽암정 |
|
11 |
의성김씨 |
김진金璡 |
임하면 천전리 |
입향, 덕행 |
백운정 |
|
12 |
|
김성일金誠一 |
서후면 금계리 |
학자, 관료 |
석문정 |
임천서원 |
13 |
|
김용金涌 |
임하면 천전리 |
학자, 관료 |
|
|
14 |
|
김굉金굉 |
일직면 구미리 |
학자, 관료 |
자운정 |
|
15 |
|
김성탁金聖鐸 |
임하면 천전리 |
학자, 관료 |
|
|
16 |
광산김씨 |
김언기金彦璣 |
와룡면 가구리 |
학자 |
|
용계서원 |
17 |
|
김령金? |
와룡면 오천리 |
학자, 관료 |
|
|
18 |
풍산류씨 |
류경심柳景深 |
풍천면 하회리 |
학자, 관료 |
|
|
19 |
|
류중영柳仲? |
풍천면 하회리 |
학자, 관료 |
|
|
20 |
|
류운룡柳雲龍 |
풍천면 하회리 |
학자, 관료 |
겸암정 |
화천서원 |
21 |
|
류성룡柳成龍 |
풍천면 하회리 |
학자, 관료 |
옥연정 |
병산서원 |
22 |
|
류중엄柳仲淹 |
풍천면 광덕리 |
학자 |
파산정 |
타양서원 |
23 |
전주류씨 |
류승현柳升鉉 |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
학자, 관료 |
|
|
24 |
|
류정원柳正源 |
예안면 주진리 |
학자, 관료 |
삼산정 |
|
25 |
|
류직 |
임동면 고천리 |
학자 |
|
|
26 |
|
류휘문柳徽文 |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
학자 |
|
|
27 |
|
류치명柳致明 |
임동면 수곡리 |
학자, 관료 |
만우정 |
|
28 |
흥해배씨 |
배삼익裵三益 |
안동시 송천동 |
학자, 관료 |
|
|
29 |
원주변씨 |
변중일邊中一 |
서후면 금계리 |
효행 |
|
|
30 |
진성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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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지역의 향사를 지내는 서원
안동지역의 향사를 지내는 서원
서원명 |
배향인물 |
설립연대 |
향사일 |
소재지 |
춘향 |
추향 |
경광서원 |
배상지, 이종준, 장흥효 |
숙종12년(1686) |
|
9월 중정 |
서후면 금계리 |
고산서원 |
이상정, 이광정 |
정조13년(1789) |
3월 초정 |
9월 초정 |
남후면 광음리 34 |
도계서원 |
권위 |
숙종13년(1687) |
3월 중정 |
9월 중정 |
북후면 도촌리 359 |
도산서원 |
이황, 조목 |
선조7년(1574) |
2월 중정 |
8월 중정 |
도산면 토계리 680 |
동산서원 |
천만리 |
1961년 건립 |
3월 중정 |
9월 중정 |
성곡동 |
명호서원 |
이원, 이주 |
정조14년(1790) |
|
9월 중정 |
정상동 512 |
벽계서원 |
강봉문 |
철종11년(1860) |
3월 하정 |
|
북후면 장기기 |
병산서원 |
류성룡, 류진 |
광해5년(1613) |
3월 초정 |
9월 초정 |
풍천면 병산리 |
봉암서원 |
남응원,남융달남급, 남천한 |
철종12년(1861) |
3월 중정 |
|
풍산읍 매곡1리 559 |
분강서원 |
이현보 |
숙종28년(1702) |
3월 상사 |
|
도산면 운곡리 63 |
서산서원 |
이색, 이홍조 |
영조47년(1771) |
3월 중정 |
9월 중정 |
일직면 원리 |
역동서원 |
우탁 |
선조3년(1570) |
2월 하정 |
8월 하정 |
송천동 391 |
용강서원 |
최치원 |
현종12년(1671) |
2월 하정 |
|
용상동 산63-1 |
용계서원 |
김언기, 권대기 |
정조2년(1778) |
3월 초정 |
|
와룡면 산야리 |
유암서원 |
이정백 |
영조37년(1761) |
3월 중정 |
|
와룡면 주하1리 |
임천서원 |
김성일 |
광해10년(1618) |
3월 초정 |
9월 초정 |
송현동 |
창렬서원 |
하위지 |
순조5년(1805) |
|
9월 초이틀 |
서후면 교리 273 |
청성서원 |
권호문 |
광해4년(1612) |
2월 하정 |
8월 하정 |
풍산읍 막곡리 |
타양서원 |
손홍량, 김자수, 류중엄 |
영조17년(1741) |
3월 중정 |
|
일직면 조탑리 |
기양서원 |
유복기, 유의손 |
영조4년(1780) |
3월 초정 |
9월 초정 |
임하면 수곡리 |
은곡서당 |
박진 |
중종32년(1537) |
3월 중정 |
|
송천동 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