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 안동美
- 건축
- 신세동 7층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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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국보 제 16호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소재지 : 경북 안동시 법흥동 8-1
- 시 대 : 통일신라시대
- 분 류 : 전탑
탑은 부처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한국의 경우 탑은 석탑이 일반적이지만 안동의 경우 벽돌로 쌓은 탑 즉 전탑(塼塔)이 많다. 왜 전탑이 안동지역에 집중하여 분포하는지 아직 역사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전탑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신세동전탑이며 안동시 법흥동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전탑의 대부분이 안동에 있으며 영양, 제천등지의 탑도 안동문화권과 맥이 닿아있다고 보고 있다.
안동문화권에 전탑이 집중된 것은 전탑의 최대 수수께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이 수수께끼는 안동지역에 정착한 불교신앙집단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정황과 사상적 맥락이 함께 고려될 때 이 문제의 실마리가 잡히게 될 것이다.
신세동 전탑이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려진 자료가 없어 현재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국에서 목탑이 전탑으로 대체되는 시기는 7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때 안동에서도 전탑이 동시에 조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이설을 받아들인다면 7세기경에 신세동 전탑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주와 안동의 전탑 양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7세기경에 경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탑이 안동에서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지는 시기를 고려한다면 8세기경에 안동에서 전탑이 조성되었다는 주장이 많다.
신세동 전탑은 낙동강변에 인접해 있다. 안동지역 전탑의 대부분이 안동에 인접해 있는데 이점도 안동지역 전탑에 얽힌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현재 안동지역 전탑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되는 것만 신세동 전탑, 동부동 전탑, 조탑동 전탑이 있다. 파손이 심각한 것으로는 금계동 전탑, 대사동 모전탑이 있으며 기록과 전탑지가 남아있는 것은 임하사 전탑지, 옥산사 전탑지, 개목사 전탑지가 있다. 안동 문화권인 영양의 봉감동 모전탑, 영양 삼지동 모전탑, 영양 현이동 모전 등도 안동의 전탑과 관련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세동 전탑은 법흥사에 속한 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법흥사와 관련된 박효수의 시가 남아있으며 17세기에 편찬된 영가지(永嘉誌)에도 법흥사의 기록이 남아있다. 영가지에는 법흥사전탑 즉 신세동 전탑에 대한 기록도 나오는데 “부성(府城) 동쪽 5리 지점에 있다. 7층이며 본부(안동읍의 대비보(大裨補)이다. 성화(成化) 정미년(丁未年)에 개축하였다. 위에 금동 장식이 있었는데 이고(李股)가 철거해서 관(官)에 납품하여 객사에 필요한 집기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가지에 보이는 것처럼 신세동전탑은 안동의 대비보(大裨補)로서 안동지역민들에게 신성시 되는 상징물이었다. 19세기에 제작된 안동읍도(安東邑圖)에 법흥사 전탑이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안동읍의 동문 밖에 탑이 우뚝 솟아있어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탑은 어떻게 다가갔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현재 신세동 전탑의 뒤편으로는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탑동파 종택과 연결된 곳에 임청각과 군자정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로 보면 고성이씨 종가에 쌓인 형상이다. 전면으로는 일제강점기 때 건설한 다닌 중앙선 기찻길이 있고, 그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갑신년 수해 때 전탑의 기단부까지 물이 찼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